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문단 편집) == 기타 == ||<-2>{{{#!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창호갓2.jpg|width=100%]]}}}||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창호갓3.jpg|width=100%]]}}}||{{{#!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창호갓.jpg|width=100%]]}}}|| 이 대회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밝은 얼굴로 여유롭게 입장하는 중국 기사들과 달리 홀로 걸어가면서 외로운 투쟁을 벌이는 듯한 이창호의 모습이 압권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창호가 보란 듯이 전부 물리쳤으니, 이창호의 위용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으로 후술할 드라마에서도 재현될 정도였다. 이 스토리는 [[응답하라 1988]]에서 [[최택]]의 에피소드로 등장하였다. 사실 최택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이창호를 그대로 [[모티브]]로 하였다. 그런데, 1988년에는 이런 방식의 국제 기전이 아예 없었다. 이 상하이 대첩은 2005년이고, 농심신라면배의 선배격인 [[진로배]] 국가대항전도 1992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대회로 이창호의 5연승은 농심신라면배의 최다 연승기록으로 남게 된다. 물론 해당 대회의 전신인 [[진로배]] 제5회 대회에서의 [[서봉수]]의 9연승이란 어마어마한 기록이 존재하긴 하나, 농심신라면배로 한정지었을 경우 그렇다는 얘기다.[* 1996-1997년 제5회 진로배 국가대항전에서 제2장으로 출전하여 중국과 일본의 정상급 기사 9명을 연파한 [[서봉수]]의 9연승 기록은 바둑 국가대항전의 전설 중 전설이다.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왜냐하면 이 기록이 깨지려면 비교적 약체라서 초반에 나오는 기사가 당대 최고의 기사들 9명을 한큐에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훗날 [[강동윤]]이 12회서 5연승 타이기록을 세웠으며, 18회서는 [[판팅위]]의 7연승, 19회서는 [[신민준]]이 6연승으로[* 그것도 이전대회 7연승의 위엄인 판팅위를 1국부터 꺾은 기록이었다.] 국내기사 기록까지 갱신당하지만, 이들같이 비교적 약체가 지목되는 초반과는 달리 하나같이 고수가 쏟아져나오는 후반부에 5연승을 달성한 점은 빛바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창호 홀로 남겨졌을 때의 중압감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 해인 [[2005년]]~[[2006년]] 대회에서는 [[이창호]] 九단이 14국에만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는 [[조한승]] 九단의 3연승으로 무난하게 한국이 우승하나 싶었는데, 하필 이창호가 최종국에서 만난 상대가 이창호의 천적 [[요다 노리모토]]. 요다 九단이 마지막까지 내리 연승을 찍고 최종국에 이창호 九단이 나와 천적 요다 노리모토 九단이 3연승을 찍음으로서 우승컵을 일본에 주게 된다.[* 이것이 농심신라면배 최초이자 유일한 일본의 우승컵.] 그리고, 이창호는 같은 2006년, 서울에서 열린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 한중일 3국이 돌아가면서 치른다.] 결승국에서, 전년 마지막 대국을 했던 왕시에게 패한다. 왕시는 이 승리로 五단에서 九단으로 즉시 승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왕시의 유일한 국제대회 우승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야말로 정점을 찍은 이 대회 이후, [[초신성|'''이창호 九단의 전성기가 사실상 끝났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물론 이후로도 이창호는 여전히 30대 중반까지 세계 정상권 기사 중 한명이긴 했지만, 이전까지의 압도적 1인자에서 내려왔다고 평하는게 옳다.[* 농심배 대회 직후 펼쳐진 [[춘란배]] 우승을 마지막으로 이창호는 세계대회 우승이 없다. 이후로도 세계대회 결승만 10번을 밟았으며, 이는 이창호 시대 이후 1인자로 발돋움한 이세돌, 구리 다음가는 국제대회 성적이었다. 다만 [[홍진호|무언가]]의 저주라도 걸린것처럼, 세계대회 10연속 준우승이라는 기록아닌 기록을 세우고 만다. 1인자 자리에서 내려오긴 했지만, 이후로도 이창호는 2010년까지 고레이팅 기준 세계랭킹 3위를 지킨다.] 다름이 아니라 이 대회 이후 이창호 九단은 나이 때문인지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 와중에 다른 기사들이 이창호에 대해 파고들며 연구한 것이 효과를 보며, 이창호의 패배가 잦아졌다. 여담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2023 월드 챔피언십|18년 후 2023 월즈]]에서 한국 LCK 팀이 [[T1/리그 오브 레전드|T1]]을 제외하고 전멸하고 중국 LPL 팀만 남아 이창호와 비슷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T1이 LNG, JDG, 웨이보를 차례로 격파하며 소환사의 컵을 들면서 롤판 상하이 대첩을 찍었다.[* 토너먼트에서 만나지 않은 BLG는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승리해 이창호가 중국 기사들을 전부 격파한 것처럼 T1도 LPL 전승을 기록했다.] LCK 중계진도 4강과 결승에서 상하이 대첩을 언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